떠난지 이제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이베이의 G마켓 인수 발표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두서없이 나열해보자면,
G마켓이 옥션을 이긴 이유?
1. 차별화된 전략 + 기막힌 카테고리 선정
옥션이 경매만할 때 오픈마켓에 고정가 판매를 도입했다. 지금와서는 당연한듯 여겨지지만 그 당시에 그런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밀어붙였다는 사실 자체가 진짜 대단한거다. 게다가 온라인에선 안된다고 하던 의류를 공략했다. 얼마나 반대가 심했겠나? 벤처기업은 한번의 전략적 의사결정 미스는 바로 폐업으로 이어진다. 그야말로 외줄타기. 외줄타기 몇년을 한 끝에 시총 1조원짜리 나스닥 상장기업까지 되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2. 미칠듯한 스피드의 실행력
SKT/11번가에 1년 반정도 있다보니 알겠더라. G마켓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 조직인지. 좀 투박한 면이 있긴 하지만 일을 되게 하는 측면에서는 단연코 옥션/11번가와 비교가 안된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2~3배 정도의 스피드가 난다. 의사 결정자가 워낙 판단을 빨리 하기 때문인 점이 가장 크다. 정확한 판단을 한답시고 이래저래 자료 뽑고 격식 갖춰 보고 올리고 그럴 시간에 빨리 뭔가를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잽싸게 방향 수정한다. (후발주자인 11번가가 이게 엄청 심하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1위 따라잡겠다고... 하지만 윗선이 그런 문화에 젖어있는 사람들이라 아마 못바꿀거다)
3. 1위 업체의 방심
옥션 창업 멤버 출신의 11번가 임원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옥션이 이베이에 인수된 후 특유의 문화를 잃어버리고 관료화되고 조직이 활력을 잃었다. 그리고 당시 압도적인 1위 자리에 도취되었다. 그래서 G마켓이 무섭게 크는 것을 방관하다가 당했다."
그 분말고 옥션에 8년정도 다닌 다른 분은 이미 2004년 2005년 경에 이베이 본사에서 G마켓이 무섭게 크고 있는걸 알고 있었고, 어떻게 다른지 분석한 자료도 다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 자료 나한테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런데도 저러다 망하겠지.. 하고 방심했다고 한다. 2004년 2005년만해도 옥션의 오픈마켓 시장 점유율이 70% 는 되었으니까.
과거는 저렇게 설명이 되겠는데, 미래는 어떨까?
이베이는 G마켓 모델로 아시아권을 뚫겠다고 하는데 저 모델은 옥션도 이미 하고 있다. 11번가도 하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는 표준이 되다시피한 모델이다. 이 모델의 핵심은 "셀러영업" 이다. 이베이처럼 고상하게 경매 시스템 열어놓고 놔둔다고 해서 척척 돌아가는 그런 모델이 전혀 아니다. 엄청 잔손이 많이 가는 BM인 것이다. G마켓 샀다고 해서 일본/중국에서의 셀러 영업력이 바로 생기는건 당연히 아니다. G마켓 일본 사이트가 1년정도 되었는데 셀러 영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http://it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serial=398123&g_menu=020300
이게 뭘 말하는건가?
일본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고, G마켓 모델이 통할지 전혀 알 수 없다. 옥션이 이미 하고 있는 BM인데다 G마켓 재팬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베이는 도대체 왜 샀을까? 일설에 의하면, 이재현 이베이 아태대표와 박주만 사장의 정치적 의도가 작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두 사람의 임기가 얼마 안남은 상황인데 옥션은 G마켓에 1위 자리를 내줬고, 영업 이익도 분기별 적자까지 봤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만한 회심의 카드로 본사에 G마켓 인수를 설득했다는 그런 얘기다. 인수를 했으면 일단 그거 가지고 어찌어찌하면서 몇 년은 더 갈 수 있을테니.
난 G마켓이 옥션이 그랬던 것처럼 지극히 관료화되진 않을까 그게 제일 우려스럽다. G마켓 BM의 핵심은 셀러 관리, 스피드인데... 관료화된 조직에서 그걸 예전처럼 잘 할 수 있을지, 의욕적으로 새로운 상품 카테고리를 발굴해나갈 수 있을지.. 그런 생각이 든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떨어질 낙하산들(예전의 옥션이 그랬듯...) 신-구 세력간의 갈등 등등... G마켓은 구영배 1인 카리스마가 지배하는 회사에서 조직간 분열-갈등이 생길 일이 없었는데 이제 낙하산들 떨어지면 회사가 어찌될지. 그 사람들이 보기에 구 사장은 대주주도 아니며, 피인수기업의 대표(패장?) 일 뿐이라고 생각될테니...
@G마켓이 관료화/내부갈등 등으로 특유의 활력을 잃어버린다면 11번가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1번가는 태생부터가 관료적인 문화여서 그 기회를 얼마나 잘 이용할지...
@@11번가의 가장 문제는 G마켓이 그랬던 것처럼 차별화된 BM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11번가의 책임자급 이상은 차별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이자 비극은 그걸 해본 사람이 없다는데 있다. -_-;;; 그걸 해본 사람이 있었다면 진작에 G마켓을 위협하는 업체가 하나 생겼겠지. 어차피 그 업계에서 흘러들어온 사람들인데. G마켓의 경우 중요한 전략적 아이디어와 서비스들이 사장 머리에서 나왔고 그 때문에 그걸 뚝심있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 11번가는 뭐.. 전형적인 대기업 관리자 타입이다. 외주 업체 쪼던 것처럼 실무 팀장급들한테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가져오란 말이야~!" 하고 쫄 뿐이다. 이런게 기량의 차이겠지. (누구나 아는 차별화란게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Posted by maceo

